최근 서울 은평구·서대문구·마포구와 경기 고양시 일대에 이른바 ‘러브버그(사랑벌레)’라 불리는 계피우단털파리 떼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대거 나타났다. 이들의 정식 명칭은 ‘플리시아 니악티카’으로, 약 1cm 크기의 파리과 곤충이다. 짝짓기 할 때는 물론 평소에도 암수가 쌍으로 다녀 러브버그라 불린다.
러브버그는 사람에게 해로운 벌레가 아니라 환경 정화에 도움이 되는 익충(益蟲)이라는 게 전문가 의견이지만, 징그러운 생김새 때문에 불쾌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많다. 시민들의 ‘민원 폭탄’이 이어지자 지자체는 어쩔 수 없이 방역 요원 등을 투입하며 벌레 퇴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 은평구청 관계자는 “러브버그 관련 민원이 어제부터 이틀만에 800건 이상 접수됐다”고 20일 밝혔다. 이에 구청은 이번주부터 보건소 인력과 새마을자율방역단 등을 동원해, 발생 근원지인 야산 인근 경계지역을 중심으로 방역 작업을 벌이고 있다.
러브버그의 등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여름에도 서울 서북부 지역에 러브버그가 대량 번식해 주민들의 민원이 터져나왔다. 당시에도 러브버그 방역에 구청 요원과 민간방역단이 투입되는 등 한바탕 방역 작업을 치렀다. 러브버그가 약 2주만에 급격히 자연 감소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예년보다 덥고 습한 이상기후로 러브버그 출몰 시점은 전년보다도 앞당겨졌다. 작년에는 7월 초부터 러브버그가 대량 발생했는데, 올해는 그보다 2~3주 빠른 6월 중순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한 곤충 전문가는 “외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 파리과 곤충에게 고온다습한 요즘이 번식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했다.
이에 SNS에는 서울 서북권 일대를 중심으로 러브버그 목격담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 은평구와 서대문구, 고양시의 맘카페와 커뮤니티 등에서는 “러브버그가 무서워 창문 못 열고, 전기세 무서워 에어컨 못트니 정말 후덥하다” “오늘만 러브버그를 20마리 잡았다” “작년보다 날개도 더 커진 것 같다” “벌써부터 창틀에 러브버그 사체가 가득이다”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지자체는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되, 무조건적인 방역은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민원이 많은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방역 중”이라면서도 “익충을 마구 없앴다간 생태계가 교란될 가능성이 있어 선제 방역은 지양하고 있다”고 했다. 마포구 관계자도 “러브버그 민원이 이제 막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러브버그 방역에 신중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살충제로 방역 작업을 진행하면 익충인 러브버그 뿐만 아니라, 주변의 생명체에도 해롭다는 것이다. 한국곤충연구소 정부희 박사는 “애초에 러브버그가 지나치게 번식하게 된 것도 생태계가 파괴됐다는 증거”라며 “과잉 방역으로 생태계를 더 파괴하면 제2의 러브버그가 등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재난문자를 이용해 러브버그가 무해하다는 올바른 정보를 시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게 대안”이라고 했다.